두드림 시즌2  2023년  29호

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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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경주 사무금융노조 법규부장

푸코는 근대사회에서 권력이 개인의 신체를 지배하는 미시적인 방식에 대해서 주목했다. 이 방식에는 ‘위계질서적 감시’, ‘규격화하는 제재’ 그리고 ‘검사’의 원리가 있다. ‘위계질서적 감시’란 간단히 설명해서 모든 것이 노출되는 가시적 공간에 개인을 배치하고 응시하는 것인데 이런 응시만으로 과도한 폭력 없이 개인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 ‘규격화하는 제재’란 허용되는 것과 허용되지 않는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규범을 아주 세밀하게 작성하고, 그 세밀한 규범을 어기면 처벌하는데, 그렇게 하면 개인은 언제나 규범 내에서만 머무르고자 한다. ‘검사’는 개인을 평가하고 측정하면서 다른 개인과 비교하고 규범을 준수하는지 확인하는 기능을 한다. 검사한 내용은 정밀한 기록으로 남기는데, 남겨진 기록 안에 개인은 갇히게 된다(학교에서의 시험 결과나 생활기록부, 회사에서의 성과평가기록 등). 노출된 개인을 응시하는 것, 통제하는 규범을 만드는 것, 그리고 일상적으로 검사하는 것, 이러한 것이 작동해서 개인을 감시하는 원리를 ‘규율 권력*’이라고 한다.

*푸코의‘ 규율 권력’은 권력자의 의도나 동기와 관계없이 기능하는 것이고 근대사회에서 작동하는 권력관계 그 자체를 밝히기 위해서 도입한 개념으로, 통치자 개인의 의지만으로 실현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블레이드 러너, 리들리 스콧(워너 브라더스, 1982), 서양철학에서 응시(gaze)는 중요한 모티브이다. (출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105063#home)

▲블레이드 러너, 리들리 스콧(워너 브라더스, 1982), 서양철학에서 응시(gaze)는 중요한 모티브이다. (출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105063#home)

이런 규율 권력 체계 안에서는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만으로 개인은 자기검열을 하게 되고 스스로 규범을 지키도록 통제한다.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이만큼 효율적인 통제 방법이 없다. 푸코는 규율 권력을 가장 잘 구현한 것이 벤담의 원형감옥이라고 봤다. 원형감옥은 중앙에 가장 큰 감시탑이 있고 그 주위에는 원형의 건물이 감시탑을 둘러싸고 있다. 감시탑에 있는 간수는 모든 죄수를 지속적이고 전면적으로 볼 수 있는 반면에 죄수는 간수를 전혀 볼 수 없다. 푸코는 이런 장치가 권력을 ‘자동적으로’ 기능하도록 한다는 데에 주목했다. 간수는 없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죄수는 간수를 전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죄수는 감시당하고 있다고 의식하면서 스스로 통제하고 규범을 내면화하고, 규범을 준수한다.

푸코는 이 원리가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봤다. 군주의 전근대적 지배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지배방식인 규율 권력은 형사제도를 만들고 한 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도록 하면 감시의 가능성 때문에 구성원들은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그러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감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런 감시의 일반 원리가 감옥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하여 작용하게 되면 감시의 대상에 누구를 넣더라도 효과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대상에 노동자나 노동조합을 넣으면 그것도 당연히 가능하다.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감시에 특화된 감옥 건축양식, 판옵티콘

(출처:https://ppss.kr/archives/99647)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감시에 특화된 감옥 건축양식, 판옵티콘

(출처:https://ppss.kr/archives/99647)

나는 윤석열 정부의 가장 큰 특징은 피아의 구분이라고 생각한다. 아군은 감싸고 적은 용서하지 않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한다. 무슨 논리로 도출된 결과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용납하기 어려운 것 같다. 화물연대와 강대강 대치로 낮은 지지율을 극복해본 경험의 단맛을 잊지 못하고 연일 노동계에 대한 적대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노동조합에 대해 회계장부 제출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는 노동조합에 대해 정부지원금 중단과 함께 과태료를 부과할 것이며, 세액공제 중단까지 거론하면서 압박하고 있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행정관청은 노동조합의 내부 문제에 대하여 간섭하는 것을 최소화했는데, 정부의 방침이 바뀌면서 정부지원금 사업의 회계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규약이 위법하므로 시정하라는 요구까지 하고 있다.

윤석열은 “노동 개혁의 가장 중요한 분야가 노사 법치 확립인 만큼, 회계자료 제출 거부에 대해서는 법적 조치를 철저히 강구하라”고 지시하고, 노동부 장관은 “앞으로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노조 회계공시시스템 구축 등도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이며 국제기준에 맞춰 조합원 열람권을 보장해 결산 결과뿐만 아니라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로 확대하고 회계감사 사유도 늘리는 등 전반적인 법·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늘어놓은 단어만 보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분명 설득력이 있다. 그러니 여론이 노동조합에 우호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그 부작용은 노동조합만이 감당해야 할 것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유독 법치를 강조하는데,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도덕 기준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물론 행정부 수반이 법 준수를 염불처럼 외는 것도 크나큰 문제다) 정부가 특정한 어떤 대상에 대해서만 유독 법 준수를 강조한다. 수많은 규범 중에서 정책적 판단에 따라서 일부 규범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대상을 정해두고 그 대상을 통제할 수 있는 규범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바를 관철한다.

▲출처: 고용노동부 공식 블로그 (https://blog.naver.com/molab_suda/223022630963)

▲출처: 고용노동부 공식 블로그 (https://blog.naver.com/molab_suda/223022630963)

안타깝게도 놀랍도록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와 검찰은 한 몸이라는 것을 온 국민이 알고 있는 상황에서, 여당 대표나 야당 대표가(그들의 잘잘못을 떠나서) 검찰 앞에서 절절매는 모습을 매일 언론에서 목격한 상황에서, 검찰총장 시절 특정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들의 개인정보와 성향을 편향된 시각에서 분석해서 문건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사법부까지 감시한 전력이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막강한 수사력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원하면 언제든지 누군가를 감시해서 기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노동조합에 대한 개입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

회계장부를 제출하라는 과도한 행정개입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혹은 결과적으로 제출을 거부하더라도 언제 제재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창고에 쌓여있던 상당 기간의 회계장부를 열어본다. 회계장부에 문제가 없는지 들여다볼 때 어쩔 수 없이 행정관청이 요구한 기준대로 점검해본다. 오래전에 정부지원금으로 연구사업을 진행한 노동조합에 뜬금없이 회계자료를 확인하겠다면서 사무실로 찾아가서 제대로 자료를 갖추었는지 검사를 하겠다고 한다. 한참 자료를 점검한 공무원이 ‘부적격’ 판정을 주고 간다. 기록으로 남겨지면 다음 지원금을 장담할 수 없게 되거나, 다음 지원금을 지출할 때 결국 스스로 알아서 행정관청이 제시한 기준대로 회계처리를 하게 될 것이다. 규약을 위반해서 탈퇴한 지부에 대해서 소송을 제기하자 행정관청은 규약이 위법하다면서 곧바로 노동위원회로 달려갔다. 앞으로 규약을 위반한 조합원을 제재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일에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말은 법치주의 실현이고, 노동조합에 대한 감시나 개입이 아니라 투명성 강화라고 주장하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제로 원하는 바는 법을 통한 노동조합에 대한 통제이다. 노동조합의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거나, 위법한 규약의 부작용을 우려해서 시정하려는 목적이 아니라(진실로 그런 목적이라면 정말로 바보 같은 짓이고 막대한 행정력 낭비다) 노동조합을 길들이고 싶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런 통제를 통해서 노동조합의 자기검열이라는 잠재적인 감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가는 사람은 없지만 그 법의 존재 자체만으로, 언제나 법 위반 여부를 감시당할 수 있다는 의식만으로 충분히 통제가 가능하듯이 윤석열 정부가 노동조합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노동조합의 행동반경을 좁게 만들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조합의 모든 것을 완전하게 감시하고 장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막상 어떤 선택이나 행동을 할 때는 그런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규율 권력은 하나의 시스템이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가 그 대상에 노동조합이 아닌 누구를 넣어도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래서 노동조합만의 문제는 아니다. 죄수들이 감시탑을 무서워하는 것은 감시받는다는 공포 때문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노골적인 통제를 목격한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언제든지 그 대상이 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자기합리화를 통해서 자기를 통제할 수밖에 없다. “규범을 위반해서 처벌을 자처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지켜야 하는 규범이라면 알아서 지키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권력의 시선을 자기 안에 내면화하고 순종하는 태도를 익히게 된다. 

노동조합에 제기된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 반성하고 자성하는 것을 넘어서 정부가 통제하려는 시도에 열광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문제적이다. 노동조합에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서 분명 되돌아봐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진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규율 권력을 강화하는 시도임이 자명하고 이 시도가 성공하면 그 다음에는 누구든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오늘은 노동조합의 일이지만 내일은 나의 일이 될 수 있다. 사실, 다음 대상이 없더라도, 내가 그 다음이 될 수 있다는 은밀한 공포만으로도 충분히 ‘자동’으로 감시 체계는 작동하고 있다. 이런 감시와 자기검열로 점철된 판옵티콘 사회를 보고만 있을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참고문헌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오생근 옮김, 나남, 2003

양운석, 『미셸 푸코』, 살림출판사, 2012

권오상, 『시각의 사회성에 관한 연구: 푸코와 라캉의 응시개념을 중심으로』, 조형미디어학, 2020

조극훈, 『미셸 푸코의 권력이론과 감옥담론』, 교정담론 제15권 3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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