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나에게 Running이란?
Running이라기 보다는 뜀박질 수준이었다.
운동회, 체력장(MZ는 모른다는 슬픈 사실), 그저 시키면 하는 그런 뜀박질이었다.
주어진 시간에 숨이 턱에 차도록 결승선까지 도달하는 것.
학창시절 1000m오래달리기는 항상 테스트에 있었고, 그때 체육선생님은 사점이라는 것을 느껴보라고 했었다.
사점,死點, dead point
장거리를 달릴 때 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숨이 차며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이때의 극단적인 고통의 시점을 말한다. 운동 강도가 강할수록 빨리 사점에 도달한다. 트레이닝을 잘 쌓은 사람에게는 사점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점이라니.
한자로는 죽을”사” ,영어로는 dead가 들어간다. 죽을 것 같은 시점이라니 정말 무시 무시한 말이다.
모두 일렬로 서서 1000m 오래달리기 스타트를 하면 설렁 설렁 뛴다고 해도 이내 숨이 턱에 차고 이게 사점인가? 느끼는 순간에 도달한다. 숨쉬는 운동밖에 모르는 폐활량, 초라한 근육량에 걸맞게 빠르게 사점에 도달했고, 선생님이 포기는 없다고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죽을힘을(?)다해 뛰었다. 혼날까봐 억지로 뛰다가 사점을 넘어가는 순간에 도달했고, 죽을것 같았는데 죽을 것 같지 않아지는 편안한 달리기의 순간이 오다니! 묘한 쾌감이 느껴졌었다. 오래달리기는 그렇게 내게 작은 성취감을 느끼게 해줬었다.
하지만, 달리기는 유년시절 내게 커다란 기쁨은 아니었었나 보다. 그렇게 연례 행사 외에는 달리고 싶은 즐거움은 아니었고 그때 당시에는 달리기가 취미라는 친구들 또한 없었다.
그저 체육시간 활동 중 하나였고 , 트렌디하지도 않았었다.
내게 달리기는 손기정, 황영조 같은 선수들이 하는 빡센 운동이었다. “풀코스라니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30대 즈음에 우연히 마라톤 행사를 보게 됐었다
조,중,동 같은 언론사 주최 마라톤이 아니었고 Nike, Adidas, 뉴발란스 등에서 속속 5km로 시작하는 마라톤을 주최하기 시작했다. 마라톤은 마치 풀코스를 뛰어야만 할 것 같았는데… 5km라니!
즐거운 마케팅에 꼬여 첫 5km를 도전했고… 사실 5km를 마라톤이라 말하기 부끄러워 그저 오래달리러 한번 나가 볼께요 했었다.
역시나 1km로도 안 되어서 고비는 찾아온다.
왜 신청했지? 후회막심한 순간, 얼굴도 모르는 러닝 메이트들이 주변에 가득 하고, 그때는 빠른 포기가 부끄러워 나를 다독이며 달리기 시작했었다.
1000m를 넘어가는 첫 도전이었다. 끊임없이 포기하고 싶어지는 이 힘듦이란?
길가에 응원하는 사람들로 달래고, 중간지점에 나오는 음료로 목을 축이며 내 멘탈을 부여잡고 그렇게 겨우 겨우 달려갔다.
사람의 몸이란 정말 신기하다 오르막길 이후에 나오는 내리막길처럼 이렇게 숨가쁨이 정돈되고, 몸의 근육을 이용해 탄성 있게 달리게 된다니!
5km까지 뛰어서 도착한 아름다운 결과는 아니었지만(마지막은 다리가 후들거려 걸어서 겨우 도착했다) 애써 도달이란 것을 했다. 기분이 좋은 근육통이었다.
완벽한 Running은 아니었지만, 이런 작은 성취감을 모아 언제가는 큰 성취감에 스스로 뿌듯해지고 싶어 또 다른 5km를 도전했었고 그 뒤에는 10km,마지막엔 15km까지 도전 했었다.
▲뿌듯했던 Half. 도전기는 처참했지만 시도는 뿌듯했다.
15km는 정말 힘들어서 내 정신이 겨우 다리를 끌고 갈 지경이었지만, 결승선에 도착했을 때는 더없이 감격했었다. 5km에도 기력이 빠지던 다리 근육이 탄탄해지고 15km를 도전하게 했고, 폐활량도 늘어났다. 그저 옷과 운동화를 챙겨 입고 나가 내 몸을 뛰게 할 뿐인데..
팔딱 팔딱 뛰는 에너지가 있었다. 그냥 달리는 행위지만, 묘하게 “ 어제의 나”를 넘어서는 쾌감이 있었다. 몸이 무거워 천근 만근 뛰는 날도 있었지만, 점점 가볍게 뛰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디서든 Running를 즐겼던 일상
그 후 아쉽게도 마지막 15km마라톤에서 발목을 다치고는 뛸 때마다 이내 절뚝거리게 되어 당분간은 뛰지를 못했었다.부상 때문에 자체적으로 중단 후, 육아라는 커다란 발목이 잡히고 코로나가 휘몰아치며 내 삶에서 Running이란 즐거움을 잊고 살았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서 건강한 삶을 앗아갔다. 실제로 헬스장도 중단되었고, 어디를 가든 마스크 틈새마저 꾹꾹 눌러쓰며 몇 년을 살았다. 야외든 실내든 활동적인 라이프는 없는 몇 년이었다.
그리곤, 나도 혈관 쪽 질병을 진단받았었다.
현재 대형 종합병원에 내방하는 혈관 질환 환자의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있으며, 교수님은 잘 살기 위해서는 유산소 운동, 특히 숨이 찰 정도의 운동을 권장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걷기 외에 숨이 찰 정도의 운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 일주일 2~3회 30분 정도라도 달리기를 권장했었다.
생각해보니 숨차게 땀흘리며 개운함을 느끼던, Running을 했던 그때가 언제였는지?
쇼파에 누워 핸드폰 만지작 거리는 나무늘보 같은 삶이 힐링이란 순간도 많았으나, 반면에 삶의 어느 한구석의 활력이 꺼져버린 것 같은 순간들이었다. 쉼이 힐링인 동시에 또 찌뿌둥한 무기력함도 있었다.
신발장에서 오랜만에 러닝화를 꺼냈다.
달려주지 않아 새것 같은 운동화를 현관문에 꺼내 두었다. 집 앞에 트랙 앞에 서서, 서서히 달려보니 조금만 뛰어도 이내 숨이 턱턱 막히고 다리는 천근만근이다. 내 스스로 약속한 5km 뛰고 걷기를 겨우 끝내고 집에 가는 길이 힘들지만 경쾌했다. 그래 이런 기분이었던 것 같다.
이 별것 아닌 Running이 내게 작은 뿌듯함을 준다.
자주 하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할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한 조금씩 달려보자고 다짐했다
숨이 턱에 차고 , 다리 근육도 지쳐 무거워지는 사점, dead point를 가볍게 넘기고 가볍게 뛰어가는 내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두발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즐거움 Running, 달리기 또는 뜀박질.
유년시절 나에게 Running이란?
Running이라기 보다는 뜀박질 수준이었다.
운동회, 체력장(MZ는 모른다는 슬픈 사실), 그저 시키면 하는 그런 뜀박질이었다.
주어진 시간에 숨이 턱에 차도록 결승선까지 도달하는 것.
학창시절 1000m오래달리기는 항상 테스트에 있었고, 그때 체육선생님은 사점이라는 것을 느껴보라고 했었다.
사점,死點, dead point
장거리를 달릴 때 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숨이 차며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이때의 극단적인 고통의 시점을 말한다. 운동 강도가 강할수록 빨리 사점에 도달한다. 트레이닝을 잘 쌓은 사람에게는 사점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점이라니.
한자로는 죽을”사” ,영어로는 dead가 들어간다. 죽을 것 같은 시점이라니 정말 무시 무시한 말이다.
모두 일렬로 서서 1000m 오래달리기 스타트를 하면 설렁 설렁 뛴다고 해도 이내 숨이 턱에 차고 이게 사점인가? 느끼는 순간에 도달한다. 숨쉬는 운동밖에 모르는 폐활량, 초라한 근육량에 걸맞게 빠르게 사점에 도달했고, 선생님이 포기는 없다고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죽을힘을(?)다해 뛰었다. 혼날까봐 억지로 뛰다가 사점을 넘어가는 순간에 도달했고, 죽을것 같았는데 죽을 것 같지 않아지는 편안한 달리기의 순간이 오다니! 묘한 쾌감이 느껴졌었다. 오래달리기는 그렇게 내게 작은 성취감을 느끼게 해줬었다.
하지만, 달리기는 유년시절 내게 커다란 기쁨은 아니었었나 보다. 그렇게 연례 행사 외에는 달리고 싶은 즐거움은 아니었고 그때 당시에는 달리기가 취미라는 친구들 또한 없었다.
그저 체육시간 활동 중 하나였고 , 트렌디하지도 않았었다.
내게 달리기는 손기정, 황영조 같은 선수들이 하는 빡센 운동이었다. “풀코스라니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30대 즈음에 우연히 마라톤 행사를 보게 됐었다
조,중,동 같은 언론사 주최 마라톤이 아니었고 Nike, Adidas, 뉴발란스 등에서 속속 5km로 시작하는 마라톤을 주최하기 시작했다. 마라톤은 마치 풀코스를 뛰어야만 할 것 같았는데… 5km라니!
즐거운 마케팅에 꼬여 첫 5km를 도전했고… 사실 5km를 마라톤이라 말하기 부끄러워 그저 오래달리러 한번 나가 볼께요 했었다.
역시나 1km로도 안 되어서 고비는 찾아온다.
왜 신청했지? 후회막심한 순간, 얼굴도 모르는 러닝 메이트들이 주변에 가득 하고, 그때는 빠른 포기가 부끄러워 나를 다독이며 달리기 시작했었다.
1000m를 넘어가는 첫 도전이었다. 끊임없이 포기하고 싶어지는 이 힘듦이란?
길가에 응원하는 사람들로 달래고, 중간지점에 나오는 음료로 목을 축이며 내 멘탈을 부여잡고 그렇게 겨우 겨우 달려갔다.
사람의 몸이란 정말 신기하다 오르막길 이후에 나오는 내리막길처럼 이렇게 숨가쁨이 정돈되고, 몸의 근육을 이용해 탄성 있게 달리게 된다니!
5km까지 뛰어서 도착한 아름다운 결과는 아니었지만(마지막은 다리가 후들거려 걸어서 겨우 도착했다) 애써 도달이란 것을 했다. 기분이 좋은 근육통이었다.
완벽한 Running은 아니었지만, 이런 작은 성취감을 모아 언제가는 큰 성취감에 스스로 뿌듯해지고 싶어 또 다른 5km를 도전했었고 그 뒤에는 10km,마지막엔 15km까지 도전 했었다.
▲뿌듯했던 Half. 도전기는 처참했지만 시도는 뿌듯했다.
15km는 정말 힘들어서 내 정신이 겨우 다리를 끌고 갈 지경이었지만, 결승선에 도착했을 때는 더없이 감격했었다. 5km에도 기력이 빠지던 다리 근육이 탄탄해지고 15km를 도전하게 했고, 폐활량도 늘어났다. 그저 옷과 운동화를 챙겨 입고 나가 내 몸을 뛰게 할 뿐인데..
팔딱 팔딱 뛰는 에너지가 있었다. 그냥 달리는 행위지만, 묘하게 “ 어제의 나”를 넘어서는 쾌감이 있었다. 몸이 무거워 천근 만근 뛰는 날도 있었지만, 점점 가볍게 뛰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디서든 Running를 즐겼던 일상
그 후 아쉽게도 마지막 15km마라톤에서 발목을 다치고는 뛸 때마다 이내 절뚝거리게 되어 당분간은 뛰지를 못했었다.부상 때문에 자체적으로 중단 후, 육아라는 커다란 발목이 잡히고 코로나가 휘몰아치며 내 삶에서 Running이란 즐거움을 잊고 살았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서 건강한 삶을 앗아갔다. 실제로 헬스장도 중단되었고, 어디를 가든 마스크 틈새마저 꾹꾹 눌러쓰며 몇 년을 살았다. 야외든 실내든 활동적인 라이프는 없는 몇 년이었다.
그리곤, 나도 혈관 쪽 질병을 진단받았었다.
현재 대형 종합병원에 내방하는 혈관 질환 환자의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있으며, 교수님은 잘 살기 위해서는 유산소 운동, 특히 숨이 찰 정도의 운동을 권장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걷기 외에 숨이 찰 정도의 운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 일주일 2~3회 30분 정도라도 달리기를 권장했었다.
생각해보니 숨차게 땀흘리며 개운함을 느끼던, Running을 했던 그때가 언제였는지?
쇼파에 누워 핸드폰 만지작 거리는 나무늘보 같은 삶이 힐링이란 순간도 많았으나, 반면에 삶의 어느 한구석의 활력이 꺼져버린 것 같은 순간들이었다. 쉼이 힐링인 동시에 또 찌뿌둥한 무기력함도 있었다.
신발장에서 오랜만에 러닝화를 꺼냈다.
달려주지 않아 새것 같은 운동화를 현관문에 꺼내 두었다. 집 앞에 트랙 앞에 서서, 서서히 달려보니 조금만 뛰어도 이내 숨이 턱턱 막히고 다리는 천근만근이다. 내 스스로 약속한 5km 뛰고 걷기를 겨우 끝내고 집에 가는 길이 힘들지만 경쾌했다. 그래 이런 기분이었던 것 같다.
이 별것 아닌 Running이 내게 작은 뿌듯함을 준다.
자주 하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할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한 조금씩 달려보자고 다짐했다
숨이 턱에 차고 , 다리 근육도 지쳐 무거워지는 사점, dead point를 가볍게 넘기고 가볍게 뛰어가는 내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두발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즐거움 Running, 달리기 또는 뜀박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