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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이주노동자와 함께 '노동의 권리'를 세우자


글 : 해미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2003년 8월 16일, '고용허가제'로 불리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이 제정되었다. 연수생이라는 미명 하에 외국인을 착취해온 산업연수생제도가 이주노동자들의 투쟁 끝에 폐지되고, 외국인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고용허가제 시행 전, 국가는 2002년 월드컵을 위해 대거 들여왔던 이주노동자들에게 ‘자진 출국’이라는 말로 강제 퇴거를 명령했다. 국가의 사냥 같은 단속추방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이주노동자가 잇따랐다. 380일 동안 명동성당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쟁취”를 외쳤던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그 어떤 노동자의 권리도 고용주의 뜻대로 손쉽게 철거될 수 없다는 저항이었다.

 

노동자로 인정하면서도 한국사회에 필요한 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제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합법/불법'이라는 단어에 가뒀다. ‘사업장 변경 자유 제한’은 고용주의 노동 강제를 합법화했고, 어떠한 권리도 지켜지지 않는 사업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이주노동자의 존재는 불법이 됐다. 올해 고용허가제 제정과 명동성당 농성 투쟁은 20년을 맞았지만, 노동의 권리를 찾기 위한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출처 : 참세상 

2002년, 이주노동자들이 ‘(불법체류) 등록거부’와 ‘추방반대’가 적힌 팻말을 들고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쟁취 행진

고용주의 시선에서 노동의 권리를 삭제한 제도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중 대다수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오고, 그 숫자와 비율은 매년 늘어가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게 ‘노동할 기회’를 허락해주는 대신 그 외의 모든 것은 고용주의 관할로 넘긴다. 제도는 이주노동자들이 정주노동자에 준하는 노동법 적용을 받는다고 명시해놨을 뿐, ‘사업장 변경의 자유 제한’으로 노동법에 명시된 모든 권리를 무력화한다. 이주노동자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가지고 있거나 부당한 대우를 하는 사업장에서 벗어나려면 고용주의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사업장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함과 부당함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는 본국에서 사업주와 근로계약을 완료한다. 이주노동자는 본국 언어가 아닌 한국어나 영어로만 쓰여 있거나 회사명 혹은 업무 내용이 공란으로 남겨진 근로계약서도 받아들인다. 입국 전에 완료한 계약은 입국 후에 바꾸기도 어렵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건 취업비자를 취득하기 위해 들인 많은 시간과 비용, 사업주가 연락하기 전에는 거의 실업상태로 무한대기 해야 하는 조건, 그 사이 2년이라는 한국어 능력시험의 합격 유효기간이 다가온다는 압박감 등이 있기 때문이다.

낯선 타지에서 '외국인'이자 '비국민'으로서 겪는 어려움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 중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임금과 노동시간이다. 일터 바로 옆에 숙소가 위치해 있어서 고용주와 붙어 지내는 경우가 많은 이주노동자는 일터와 일상이 구분되지 않는 여건에서 고강도 노동에 시달린다. 매년 이주노동자대회가 일요일에 열리는 이유는 유급휴일에도 강제 특근을 해야 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한 만큼 임금을 제대로 받는 것도 아니다. 최저임금은 기대조차 하기 어렵고, 이 또한 체불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노동자의 체류기간 만료를 앞두고 사업주가 잠적해 버리는 경우도 더러 있다. 얼마 전 열린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피해 증언대회'에서 1,300만원의 임금을 받지 못한 상태지만 비자 연장이 되지 않아 11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례가 고발되기도 했다.

 

고용주가 자기 마음대로 계약 내용과 다른 업무 지시를 내려도 사업장을 벗어날 수 없도록 강제된 노동조건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치명적인 위험에 내몰리는 현실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2021년 기준 노동자 1만 명당 사고 사망자는 이주노동자의 경우 전체 노동자보다 6.9배나 높았다. 한편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곳을 이주노동자에게 숙소로 제공하는 문제가 드러나기도 했다. 영하 20도 한파에 난방도 안 되는 농장의 비닐하우스에서 지내던 여성이주노동자가 사망한 사건 이후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농업노동 현장에는 불법건축물이 숙소로 쓰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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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무너뜨린 노동의 권리


고용허가제가 배치한 이주노동자의 자리는 노동의 권리가 삭제되어 온 자리들이었다. 그러나 국가는 이주노동자가 무권리의 일터를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업장 변경 제한을 강화하며 더 많은 이주노동자를 무권리의 일터로 밀어 넣으려고 한다.

 

작년 12월 말, 정부가 발표한 <산업현장과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고용허가제 개편방안>은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한국사회에 부족한 ‘인력’을 이주노동자로 채우는 것을 넘어 감소하는 ‘인구’까지 메우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업종 및 쿼터 확대가 있다. 지금보다 이주노동자를 더 여러 업종에서 더 많이 쓸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올해 11만 명이라는 역대급으로 많은 이주노동자를 들이는 중이고, 내년에는 더 늘려 12만 명 이상을 들이겠다고 발표한 상황이다.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하는 근본적인 문제로 제기되어 온 사업장 변경 제한은 한층 더 강화됐다. 현재는 임금체불, 폭언과 성폭력 등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최초 3년의 취업기간 동안 최대 3회 ‘같은 업종’에서만 예외적으로 가능하다. 그런데 9월부터 입국하는 이주노동자의 경우 ‘같은 지역’으로 제한하는 요건까지 추가했다. 지역의 열악한 노동 현장에 이주노동자를 볼모로 잡아둔다고 지역소멸 위기가 해결될 리 만무한데도 말이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으로부터 이탈했을 때 사업주 책임이 아니라고 판단될 경우에는 내국인 구인 노력 없이도 바로 외국인력 고용을 신청할 수 있게 하면서, 신규고용을 제한하는 것도 폐지됐다. 이에 더해 파견근로도 제한적으로 허용하려는 정부는 ‘선제대응’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주가 더 많은 이주노동자를 더 손쉽게, 더 오래 쓸 수 있도록 하는 유연화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고용주의 곡소리에만 응답하는 한국사회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안정적으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의 외침이 이어지는 이유다.


▲출처 : 참세상 

지난 3월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숙식비지침 및 열악한 기숙사 개선 없는 고용노동부 규탄 기자회견]


제도가 속박한 권리를 함께 해방시키자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없고 고용상태를 유지하지 않으면 체류자격을 박탈하는 고용허가제 하에서 이주노동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란 고용주의 요구에 순응하며 버티거나, 버티지 못하고 사업장을 이탈하는 것뿐이다. 이주노동자를 강제노동의 굴레로 속박하고 또 동시에 강제추방의 위협으로 내몰아온 제도가 고용허가제라면, 지금 한국사회에 무엇보다 긴요한 일은 ‘권리 없는 자리’에 권리를 채우는 일이다. 20년 동안 이주노동자들이 외쳐온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은 바로 그 자리에서 국가 권력에 맞서면서 노동의 권리를 새기는 투쟁이 되어 왔다.

 


“강제노동 철폐! ILO협약 이행!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

 

오랜 노동자들의 요구와 투쟁 끝에 2021년 한국은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노동 금지에 대한 협약 29호를 비준했다. 협약 비준이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즉각 약속해주지는 않더라도, 이는 이주노동자가 ‘권리를 요구할 권리’를 스스로 실현해나가는 주체임을 한국사회에 일깨운다. 한국사회 그 어느 곳에서 일하는 그 어느 누구라도 보장받아야 할 노동의 권리를 세울 때까지, 사람답게 노동할 수 있도록 제도의 속박으로부터 권리를 해방하라고 외치는 이주노동자와 함께 투쟁을 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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