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준비청소년과 좋은 어른의 만남,  "네가 있어, 우리가 있다."


글 : 이혜원 사무금융우분투재단 팀장


# 수현이와 바다

 

“바다 본 적 있어?”

“글쎄요?”

“어쩌면, 어렸을 때 바다를 보러 갔었을 수도….”

 

바다를 보러 가는 강릉행 KTX에서 말끝을 흐리는 열일곱 살 수현이의 기억 속에 바다가 없다. 수현이는 부모의 방임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그룹홈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룹홈의 정식 명칭은 ‘공동생활가정’으로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아동 5~7명이 생활하는 곳이다. 사회복지사 등 전문 보육사가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한다. 전국에 625곳이 있다. 


수현이를 처음 만난 것은 올해 1월. 3월부터 시작하는 자립준비 프로그램 ‘네가 있어, 우리가 있다’에 수현이가 신청을 하면서다.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은 민주노총서울본부와 사단법인 희망씨,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와 함께 보호 종료를 앞둔 청소년의 자립준비를 돕고, 사회적 지지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현이의 신청서 특이사항에 ‘지적장애가 있음’이 적혀 있었다. 그룹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기에 수현이의 장애 정도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1월에 만난 수현이는 글을 읽고 쓸 수 있으며, 자기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학교 친구가 없다는 말에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다만, 교육 장소인 민서네(민주노총서울본부)에 혼자 찾아올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그룹홈 선생님은 길 찾기 연습을 사전에 지도하겠다고 약속했다. 수현이는 민서네에서 7명의 친구를 만났다. 자립에 필요한 금융교육과 노동 인권 교육, 선배와의 대화 등 프로그램도 참여했다.


사업 집행팀은 여름방학을 맞아 자립캠프 계획을 두어 달 전부터 준비했다. 청소년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고 싶은 장소를 물었을 때 제주와 부산이 많이 나왔다. 가고 싶은 이유를 물어보니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 사업 예산으로는 제주와 부산을 갈 수 없었다. 지난해에 이어 SGI서울보증 속초 연수원 숙소를 지원받았다. 8월 휴가철이라 직원들에게 돌아갈 혜택이 우리에게로 왔다. 사무금융노조 이기철 수석부위원장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숙소가 확정되어 속초 일대 가보고 싶은 곳을 청소년들과 정하기 시작했다. 강릉에 있는 하슬라아트월드, 안목해변과 카페, 속초 앞바다 물놀이와 수상스포츠, 속초중앙시장, 야외 바비큐 파티… 집행팀은 청소년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여 큰 틀의 프로그램을 짜고, 청소년들은 프로그램 사이 사이에 들어갈 식사 장소와 카페를 알아보기로 했다.

 

8월 7일~9일 2박 3일 일정으로 청소년 8명과 비청소년 집행팀과 멘토단 7명은 강릉과 속초로 자립캠프를 떠났다. 아쉽게도 전날 강원도에 큰비가 내려 바다가 성난 파도로 변해 있었다. 계획했던 물놀이와 수상스포츠, 그리고 바비큐 파티는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경험하지 못했다. 하지만, 수현이는 하슬라아트월드 야외에서, 안목해변에서, 속초 영금정에서 바다와 마주했다. 자유시간이 주어진 안목해변에서 수현이는 오랫동안 모래밭을 걸었다. 수현이의 기억 속에 바다가 들어왔다.


# 상민이와 지연이의 지갑털이

 

자립캠프를 마치고, 가장 좋았던 장소와 기억에 남는 활동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속초중앙시장이 꼽혔다. 속초중앙시장은 계획적 소비와 멘토 멘티 친해지기, 지역상권을 살리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짜였다. 청소년과 비청소년이 즐거운 점심 데이트를 하고, 그룹홈에 가져갈 선물을 구입하는 것이 미션이다. 비청소년은 점심값 2만원, 청소년은 선물값까지 포함한 4만원이 지급됐다.

 

외국인 노동자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온 상민이가 나의 짝이고, 갓난아기 때 그룹홈에 들어와 지금껏 살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지연이와 희망씨 예나국장이 짝인데, 우리는 ‘어화’를 저들은 ‘둥둥’을 뽑아 중앙시장 탐방에서 한 팀이 되었다.

 

속초 중앙시장 입구에는 방송을 탔는지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꽈배기 집이 있었다. 우리는 2시간 안에 미션을 끝내야 하기에 냄새만 맡고 지나쳤다. 시장 안은 북적북적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장을 두 바퀴 돌고, 중간중간 시식을 하고, 핸드폰으로 폭풍검색을 하고서야 상민이와 지연이가 멈춰 섰다.


지갑이 열린 곳은 젤라또 철판 아이스크림 가게. 10분 정도 줄 서서 기다렸다가 각각 4,500원을 사용했다. 기다리면서 상민이는 가게 사장님이 이주노동자라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서울에서 일하다 강원도 중식당으로 옮기면서 함께 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과 자립종료 후 아버지와 함께 살 계획이라는 것도 말해 주었다.

 

지연이는 고3 학생이지만,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보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이 더 길다. 그룹홈에서 주는 월 10만원의 용돈으로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친구들과 어울리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룹홈 엄마는 지연이가 씀씀이가 크다는 것이 불만이다. 그런데 시장에서 본 지연이는 알뜰살뜰했다. 스무 장에 만원인 쥐포를 절반으로 나눠 상민이와 반씩 지불하고, 젓갈 가게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낙지 젓갈과 동생들이 좋아하는 오징어 젓갈을 각각 1만원씩 구입했다. 시장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꽈배기 집에서 5천원을 사용하고, 인생네컷 사진을 찍는데 2천원을 사용했다. 4만원을 알차게 사용했다.


자립 청소년들은 그룹홈을 집으로 표현한다. 시설장과 보육교사를 엄마, 아빠라 부른다. 굳이 자신의 처지를 외부에,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시설을 나와 자립한 청소년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면이 정서적인 고립감, 외로움이다. 그래서 자립 후 주기적으로 만나거나 지속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다. 민서네 식구들은 ‘네가 있어, 우리가 있다’ 프로그램을 마치고도 좋은 어른과 청년으로 만남을 이어간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자립을 해야 했던 ‘열아홉 살 어른’의 사연이 전해지면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정책이 늘어났다. 그러나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시적인 지원보다 안부를 물어주고, 손을 잡아주는 사회적 관심과 지지체계가 절실히 필요하다.


#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9월 16일 토요일 오후 1시 30분 민서네에서 여섯 번째 만남이 이뤄졌다. 보드게임을 하면서 소비와 지출 교육을 받기 위해 모였다. 만남의 횟수가 늘고, 자립캠프에서 한솥밥을 먹어서 그런 것인지 전보다 대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서로가 안부를 묻고, 챙기는 모습이 한 가족 같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지훈이와 지연이의 눈빛이 다른 아이들 보다 반짝인다. 청소년들은 오늘, 희망저축계좌 정보를 얻었다. 매월 본인 저축(10~50만원) 납입자에 한하여 근로소득장려금 10만원이 적립된다는 정보다. 조만간 근로계약서를 쓴다는 지훈이의 표정이 밝다. 지연이도 근로계약서를 써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은 심리 상담과 진로상담을 진행하면서 아픈 상처와 기억을 치유할 수 있게 돕고 있다. 청소년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고, 스스로 성숙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힘을 기를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다.

 

모임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아이들에게 변화가 생긴다. 졸고, 딴짓하고, 핸드폰 만지는 수가 줄어든다. 필요한 정보를 메모하고, 서로에게 간식을 챙겨다 준다. 많은 조직과 사람들로 협업 되어지는, 협업 되어야 할 수 있는 이 사업을 할 때 특히 행복하고, 보람이 크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네가 있어, 우리가 있다’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이를 통해 만난 청소년들과 지속적 인연을 맺어나가는 데 많은분들이 ‘좋은 어른’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지면을 빌어 감사를 표하고 싶다.


#신용회복위원회 덕분에 금융교육을 재미있게 무료로 받고 있다.  #SGI서울보증 속초 연수원 덕분에 쾌적한 장소에서 여름 캠프를 더욱 알차게 보낼 수 있다.  #생활장학금을 지원해 준 전태일·이소선 장학재단 덕분에 자립하여 대학생이 된 청년이 노트북을 구입할 수 있었다. #행복한우리집그룹홈에 인터넷과 화장실을 고쳐주고, 책상을 만들어준 희망연대본부 HCN비정규직지부 덕분에 쾌적한 환경에서 아이들이 생활하게 되었다.  #금속노조서울지부 덕분에 꿈터그룹홈 옥상 누수현상을 수리할 수 있었다.  #전국사무연대노조 NH농협물류지부 덕분에 2023년 김장나눔과 학용품나눔 연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승현 사무금융노조 일반사무업종본부장과 김경선 하제상담연구소장님 덕분에 여름캠프에서 시원한 음료와 맛있는 닭강정을 먹을 수 있었다.  끝으로 친구들에게 멘토가 되어주기 위해 노력하시는 민주노총 서울본부 생활문화위원회 너나들이 선생님들 덕분에 프로그램이 알차게 운영되고 있다.  모두 고맙습니다.  더 넓은 연대를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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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 이재진 ㅣ 디자인 :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선전홍보국

제작 : 사무금융노조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 김기원 미디어위원회 위원장, 최정환 교육선전실장, 장영미 선전홍보국장, 박지호 선전홍보부국장, 유병욱 비씨카드지부 부지부장, 안성준 KB신용정보지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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